시 한수 11

지란지교를 꿈꾸며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어찌 행복할수 있으랴.영원이 없을수록영원을 꿈꾸도록서로 돕는 절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남성이어도 좋다.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다만,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만한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가 없고,수수하나 멋을 알고중후한 몸가짐을 할수 있으면 된다. 때로는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그것이 애교로 통할수 있을 정도면 괜찮고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를 쳐주고 나서,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의 일생에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나는 인연..

시 한수 2025.03.21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오늘날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지요.부자와 빈자는 아니예요. 한 사람의 재산을 평가하려면그의 양심과 건강 상태를 먼저 알아야 하니까요.겸손한 사람과 거만한 사람도 아니예요. 짧은 인생에서잘난 척하며 사는 이는 사람으로 칠 수 없잖아요.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도 아니지요. 유수 같은 세월누구나 웃을 때도, 눈물 흘릴 때도 있으니까요.​아니죠. 내가 말하는 이 세상 사람의 두 부류란짐 들어주는 자와 비스듬히 기대는 자랍니다.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무거운 짐을 지고힘겹게 가는 이의 짐을 들어주는 사람인가요?아니면 남에게 당신 몫의 짐을 지우고걱정 근심 끼치는 기대는 사람인가요?​-앨러 휠러 윌콕스 시인

시 한수 2025.01.25

업어주는 사람

오래전에 냇물을 업어 건네주는 직업이 있었다고 한다물가를 서성이다 냇물 앞에서 난감해하는 이에게 넓은 등을 내주는그런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선뜻 업히지 않기에동전 한 닢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업히는 사람의 입이 함박만해졌다고 한다찰방찰방 사내의 벗은 발도 즐겁게 물속의 흐린 길을 더듬었다고 한다등짝은 구들장 같고종아리는 교각 같았다고 한다짐을 건네주고 고구마 몇 알옥수수 몇 개를 받아든 적도 있다고 한다병든 사람을 집에까지 업어다 주고 그날 받은 삯을모두 내려놓고 온 적도 있다고 한다세상 끝까지 업어다주고 싶은 사람도 한 번은 만났다고 한다일생 남의 몸을 자신의 몸으로 버티고 살아서일생 남의 몸으로 자신의 몸을 버티고 살아서그가 죽었을 때, 한동안 그의 몸에 깃든다른 이들의 체온과 맥박을 진정시키느라 사람..

시 한수 2025.01.01

오늘은 죽기 좋은 날

오늘은 죽기 좋은 날.모든 생명체가 나와 조화를 이루고모든 소리가 내 안에서 합창을 하고모든 아름다움이 내 눈 속에 녹아들고모든 사악함이 내게서 멀어졌으니..​오늘은 죽기 좋은 날.나를 둘러싼 저 평화로운 땅마침내 순환을 마친 저 들판웃음이 가득찬 나의 집그리고 내 곁에 둘러앉은 자식들.​그래 오늘이 아니면 언제 떠나가겠나.-낸시 우드

시 한수 2024.12.15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어느날 당신과 내가날과 씨로 만나서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우리들의 꿈이 만나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어느 겨울인들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어느날 당신과 내가 만나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정희성 시인

시 한수 2024.06.22

모두가 이런 말을 한다

모두가 이런 말을 한다​나중에 이것을 해내리라.학교를 졸업하면, 아내를 얻으면, 부자가 되면, 다른 데로 이사가면, 노인이 되면.. 나는 이러저러하게 해보리라.​아이들도, 어른도, 노인도 모두가 이런 말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 한 사람도 그날 저녁 때까지 살 수 있을지 어떨지조차 알지 못한다.​이런 모든 일들에 대해 우리는 그것을 해낼 수 있을지 어쩔지, 죽음으로 방해를 받는 일이 있을지 어떨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죽음이 방해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이다. 바로 생명이 있는 동안 현재의 모든 순간에 신의 뜻을 수행하는 것, 즉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은 죽음이 방해하지 못한다.-톨스토이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은 뒤로 미루면서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살아가다가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신에게..

시 한수 2024.05.05

사람은 언제 고독을 느끼나

자기 주변에 사람이 없기 때문에 고독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남에게 전할 수 없을 때, 또는 남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어떤 관점을 지니고 있을 때 사람은 고독해진다. ​ 고독이란 자기 사고방식이 주변 사람들과 다를 때, 남의 사고방식이 납득되지 않을 때 느끼는 감정이며 그런 때는 그곳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 -칼 융

시 한수 2023.01.03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가능하다면 꽃밭이 있고 가까운 거리에 숲이 있으면 좋겠어 개울 물 소리 졸졸거리면 더 좋을 거야 잠 없는 나 당신 간지럽혀 깨워 아직 안개 걷히지 않은 아침 길 풀섶에 달린 이슬 담을 병 들고 산책해야지 삐걱거리는 허리 주욱 펴 보이며 내가 당신 “하나 두울~” 체조시킬 거야 햇살이 조금 퍼지기 시작하겠지 우리의 가는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반짝일 때 나는 당신의 이마에 오래 입맞춤하고 싶어 사람들이 봐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 아주 부드러운 죽으로 우리의 아침 식사를 준비할 거야 이를테면 쇠고기 꼭꼭 다져넣고 파릇한 야채 띄워 야채죽으로 하지 깔깔한 입 안이 솜사탕 문 듯 할 거야 이 때 나직히 모짜르트를 울려 놓아야지 아주 연한 헤이즐럿을 내리고 꽃무늬 박힌 찻잔 두 개에 ..

시 한수 2022.09.29